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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번역을 믿을 수 있을까?

     

    : 타인이 원문을 읽었을 때 나와 같은 해석을 할까? 그렇다면 타자와의 소통이 아니라 한 방향 소통이 아닐까? 결국 사이비종교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 도올이 진정한 개화는 완벽한 번역으로부터라고 말한 이유는 나 자신을 알고 타인을 아는 과정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개화라는 것은 무조건 적인 수용도 아니고 무조건적인 배척도 아니라 소통(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이다.

     

    : 바로 그 소통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같이 말해 줄 사람이 있어야하는데 서로 다른 언어를 쓰면서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세계화에 뒤떨어지는 언어는 잊혀 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세계화의 추세에 따라 다른 언어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 그래도 지켜야 하는 가치가 담겨있다면 잊혀 지지 않게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언어는 언어라는 도구적 의미일 뿐인 것인가?

     

    : 가치를 보고 살기엔 전 세계적인 추세가 물질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국가적 위치가 강대국으로 올라서야 경제적인 여력을 바탕으로 한 가치수호가 가능하지 않을까? 당장 개발도상국들이 자기 문화를 지킬 수 있는 여력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 강대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우리는 물질적인 것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며 쫓아가야 하는가? 강대국이 물질적인 부분을 충족시킨 후 문화적 가치들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그제야 우리도 그것을 따라할 테고, 결국 물질적인 부분이든 문화적인 부분이든 영원히 뒤꽁무니만 쫓는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 기본적인 개념을 공부해야 응용문제를 풀 수 있듯이, 창의성과 창조성도 가만히 있다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고 어느 정도 기본 공부를 해야 한다. 기본적인 부분은 강대국을 따라가 줘야 응용·창조적인 부분이 발현되면서 역전할 기회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 창조력은 결국 무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언어와 함께한 우리 고유의 문화들이 창조력에 도움이 된다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는가?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이 있듯이 우리문화에 뿌리를 두고 창조를 해야 한다.

     

    :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했는데, 현재의 시대상으로 봐서는 아스팔트에 뿌리를 내리는 꼴이다. 특히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지리적 특수성에서 봤을 때 자원 하나 나오지 않는 나라에서 인적 자원만으로 이렇게 발전했다. 그런데 요즘 이 인적자원인 국민들이 가장 시간을 많이 소비하는 분야가 어디인가? 바로 '영어'. 대한민국 국민 절반 이상이 영어에 미쳐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어의 동시성 측면에서 과연 한글이 가지는 가치를 그 가치 그대로 온전히 주장할 수 있을까? 그렇게 훌륭한 한글을 놔두고 왜 다른 언어에 그렇게 시간을 쏟아야만 하는가? 또한 번역의 오류를 겪으면서 많은 전공 분야에서 시간을 소비할 필요가 있을까? 이러한 면을 고려해 봤을 때 보다 더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치를 보존하기에 소모되는 재화가 너무 많고, 이 재화는 한정적이라는 사실 또한 직시해야 할 것이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 아스팔트에 뿌리를 내리는 꼴이라는 것은 오히려 무조건적인 강대국의 언어수용의 결과이다. 국가 고유의 문화는 국가가 흔들리지 않도록 뿌리를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비옥한 토양의 역할을 한다. 좋은 토양이 전제 되어 있어야만 어떠한 환경적 변화가 와도 뿌리가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언어는 인류가 진화함에 따라 함께 진화하고 변화한 것이다. 언어에는 오랜 시간 동안 그 언어를 사용한 사람들의 가치관과 문화들이 차곡차곡 담겨서 생겨난 것들이다. 그런데 그것을 당장 코앞의 자본주의에 타협하여 등한시한다면 선조들이 일궈놓은 민족적 정체성 전체가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 한글이 과연 대한민국의 고유문화라고 할 수 있는가? 사실 한글은 망가진 훈민정음이다. 일례로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에게 글자를 보급하는 사업이 실패한 원인은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훈민정음을 보급한 것이 아니라 바로 망가진 훈민정음인 한글을 보급하였기 때문이다. 글자가 없는 민족에게는 자기들의 언어를 기록할 글자가 필요한 것이지 다른 나라의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특히 훈민정음을 보급하려면 훈민정음의 특성과 그 원리를 먼저 보급하여 그들을 납득시켜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 할 수 있을 것인데 엉뚱하게도 말을 가르치는 것이 전문인 세종 학당에서 그 사업을 맡았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훈민정음을 이론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인재가 사실상 전혀 없다. 실제 찌아찌아족에게 처음으로 글자 보급을 시도한 훈민정음학회에도 훈민정음에 대해서 잘 아는 학자들이 없다. 또한 숭례문이 불에 탔을 때 조선의 국운이 다했다고 때 아닌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가장 근본적으로 착각했던 부분은 사실 숭례문은 국운이 다한 뒤로도 백년가량 건재 했다는 점이다. 대한민주주의 공화국은 조선을 포괄승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숭례문이 불탄 것은 이미 역사의 뒷길로 사라져 버렸던 조선의 국운이 다했던 것이지 대한민국의 국운과는 상관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민족의 고유한 가치는 오해의 소지가 생기기에 다분하고 이 가치가 진정한 가치인지의 진위여부조차 파악이 어렵다. 이런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불확실한 부분들을 가지고 가치를 지키자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까? 또한 사람들의 가치관과 문화들이 차곡차곡 담겨서 생겨난 것들은 그만큼 역사 속에서 변천사가 많았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의 생각을 직시하고 그들의 가치관에 따라 좀 더 실용적으로 다른 언어를 받아들이기를 원한다면 다른 언어를 받아들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 예로 든 인도네시아 글자보급의 실패 원인에서 언급했듯 찌아찌아족에게는 다른 나라의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기록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패 원인은 결국 찌아찌아족의 문화적 정체성과 한국의 문화정체성이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타 문화에 언어 보급을 실패했던 것은 이 부분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필요한 것은 문화정체성이 아닌 도구로서의 언어였다. 그러나 그 조차 실패한 이유는 언어가 도구적인 용도로만 사용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언어의 특성과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와 가치관 모든 것들을 이해해야 비로소 완벽한 이해가 가능하다. 따라서 언어 보급은 결국 한 문화의 이해와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문화 속국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그렇다면 선진국의 예를 들어보자. 실제로 대한민국 국민수준과 일본의 국민수준을 비교해보면 일본의 국민성이 훨씬 더 정숙하고 예의 있다. 이런 부분에서 문화의 상대성을 이해하고 그들이 가진 예의와 수준 높은 의식을 언어와 함께 이해하고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일석이조가 아닐까? 문화는 지켜야 할 것도 있지만 부끄러운 것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아닌 것을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고치고 수정하거나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한다.

     

    : 어느 국가든 그 국가가 지닌 특성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장점으로 비춰질 수도 있고 단점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어느 국가의 문화가 더 우위에 있는지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 자체가 문화적 상대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혹여 순위를 매긴다고 할지라도 일본의 문화가 한국보다 정숙하고 예의 있다는 것은 일본이 한국과는 다른 역사를 겪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다른 역사를 통해 형성된 문화를 과연 그들의 언어를 배움으로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혹은 언어를 통해서만 바꿀 수 있는가?

     

    자본주의와 가치

     

    : 그렇다면 다시 텍스트의 부분을 짚고 넘어가보자. 진정한 개화는 번역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주자학을 받아들이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번역은 요구되었고, 일본의 근대화는 네덜란드를 통해 서구 이론을 흡수하기 위해 막대한 인원과 물자가 투입된 번역 과정을 거쳤다. '치즈''된장'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해석학적 지평은 타 언어에 대한 이해만이 아니라 자기 언어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요구하는 이 과정들이 과연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가? 다른 문화를 자연스럽게 그리고 실용적으로 흡수하는 것도 그 국가가 지닌 특성이 될 수 있다. 역사의 측면에서는 각 민족이 겪었던 역사는 다르겠지만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생각 해 봤을 때, 후손들에게 발전하기에 조금이라도 (외국어를 배우는데 시간과 돈을 소비하지 않아도 되는)좋은 환경을 물려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 도올이 주장한 진정한 개화가 완벽한 번역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의 핵심은 번역 행위가 그 자체로 를 반성적으로 검토하는 근대적 행위이며 를 타자와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개화의 행위라는 점이다. 소통이라는 것은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다. 서로 주고받는 쌍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한 국가의 문화가 담겨있는 언어를 그대로 수용하고 따라가는 것은 결국 국가의 자립성을 잃은 문화 속국이 되어버리는 위험한 행위이다. 한국어의 존재가치가 지니는 힘을 자각하고 보존하는 환경 속에서 반성도 가능하다.

    또 하나 지적할 점은 현재 세계의 강대국은 미국이다. 그러나 G2라고 불릴 만큼 중국의 힘이 막강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영어를 사용하다가 중국어를 다시 배워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렇게 계속해서 변하는 세력국가들에게 맞추어 언어를 수용한다면 오히려 시간과 돈이 훨씬 더 많이 소비될 것이다. 이는 낭비가 아닐 수 없다.

     

    : 중국의 발전은 중국 자체의 인구가 13억이 넘어서기 때문에 일어나는 특수한 현상이다. 현 경제시장은 미국을 중심으로 요동치고 있다. 세계은행총재를 미국이 선임하고 이 총재가 말하는 한 마디에 372000억 달러에 달하는 많은 경제대국의 주식시장이 뿌리째 흔들린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했듯 문화의 상대성에 우위를 매기는 것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문화적으로 선진화 되어있는 국가의 언어를 배워야 세계경제에 살아남기 적합한 것이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지구촌'이라고 불리는 단일네트워크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도올이 말한 우리의 언어의 틀을 가지고 다른 언어의 의미를 꿰맞추는 식으로 불완전한 번역을 할 것인지 아니면 실용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고 우리 언어를 역사의 가치성을 고려하고 보존하되 제 1언어는 세계 선진국의 언어를 사용할지 말이다. 조선이 패망한 이유는 선비들의 고리타분한 고집과 흥선대원군의 척화비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좀 더 넓은 시각과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관용의 자세가 필요하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언어를 지키지 못해서일 확률이 높을까 경제적인 뒤처짐 때문일 확률이 높을까.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 중국이 성장한 것이 인구의 힘이든 어쨌든 간에 결론은 중국의 파워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하다. 이는 실질 국내 총생산(GDP)에서 올해 중국이 미국을 추월했다는 지표가 나올 정도이니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다. 미국의 파워가 언제까지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결국 경제적인 부분만을 추구하며 쫓다보면 끝이 없다는 것이다. 언급했던 흥선대원군의 경우 같은 국수주의는 물론 지양해야 하지만 사대주의 또한 지양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올바른 개화는 무조건적인 수용이 아니다. 우리 국가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문화는 지키되 배울 점이 있는 부분을 수용해야 한다.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언어를 지키되 외국어를 끌어다 써야 하는 경우에는 우리의 문화와 정서를 고려한 완벽한 번역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 이제는 '번역'그 자체의 효용성에 의문을 던져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떤 학자들은 번역어들에 담긴 해석학적 문제들에 대해 치열하게 도전하고 있을 것이다. 김용옥이 말했던 '개화'란 한문 문화권에서 한글 문화권으로 이행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우리의 근대화는 개화기 때, '개화'에 대한 생각에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막힌 혈관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괴사되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혈관을 뚫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서양 철학과 동양 철학의 일정한 부분이 동일점을 추구하고 있고 인류 사상사를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칸트는 이황의 제자라고 말했듯이 그 문화가 가진 고유한 가치만을 고집하기보다는 각 민족이 가진 언어에서 동일성을 찾고 문화의 흡수가 아닌 서로의 통일성 추구하고 인류사적인 인재양성을 위해 통합하는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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